세상에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폭풍을 품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은 그런 인물의 내면을 정교하게 포착한 작품이에요. 처음엔 평범한 학원 액션물처럼 보이지만, 한 회 한 회 볼수록 단순한 ‘싸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면의 전쟁’을 그린 심리 성장극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작품은 2022년 웨이브(Wavve)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이후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다시금 큰 주목을 받았어요.
SNS에서는 “이건 단순한 학교폭력물이 아니라, 현대 청춘의 자화상이다”라는 평이 이어졌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몰입했을까? 그 이유는 ‘약함’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새로웠기 때문입니다.
줄거리 — 조용한 학생의 반격
주인공 연시은(박지훈)은 공부 잘하고, 규칙을 지키며, 늘 조용히 살아가는 학생입니다. 싸움은커녕 큰소리 한 번 내본 적이 없는 그가 어느 날, 학교 폭력의 표적이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그는 처음엔 도망치고 피하려 하지만, 반복되는 괴롭힘 속에서 깨닫습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때부터 시은은 달라집니다. 그가 사용하는 무기는 주먹이 아니라 ‘두뇌’예요. 책상 모서리, 교재, 휴대폰 충전기… 일상적인 도구들이 그의 방패이자 칼이 됩니다. 그의 싸움은 단순히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더 이상 당하지 않기 위한 생존’ 그 자체죠.
이 장면들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폭력이 터지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시은의 눈을 오래 비춥니다. 그 눈 속엔 공포도, 분노도, 계산도 함께 깃들어 있어요. 그가 싸울 때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몰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단순히 주먹 싸움이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몰렸을 때 드러나는 본능의 기록이에요.
액션보다 더 서늘한 심리전
〈약한영웅 Class 1〉의 가장 큰 매력은 ‘폭력의 리얼함’보다 ‘심리의 리얼함’입니다.
다른 학원물들이 화려한 액션으로 승부한다면, 이 드라마는 감정의 정적 속에서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주인공 시은이 고개를 살짝 들고, 손가락을 꽉 쥐는 그 짧은 순간 — 이미 폭발이 예고된 듯한 묘한 압박감이 밀려와요.
박지훈 배우의 연기는 이 작품의 핵심이에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고,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냉정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죠. 그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지만, 그 미세한 변화 속에 수많은 감정이 읽힙니다. 냉정한 눈빛 하나가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요.
특히 카메라가 그의 눈동자를 따라갈 때, 시청자는 마치 시은의 머릿속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한 치의 흔들림이 없고, 계산되어 있죠. 그래서인지 싸움 장면보다도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의 침묵”이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고독 속의 성장, 진짜 강함의 의미
시은은 전형적인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외롭고, 상처받고, 감정을 숨기는 아이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독이 그를 성장하게 합니다. 세상을 미워하면서도 세상 속에서 버텨야 하니까요.
그의 곁에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안수호(최현욱), 그리고 오범석(홍경). 이 셋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서로를 지켜주고, 또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 모순된 감정들이 이 드라마를 더 깊게 만듭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은은 ‘진짜 강함이란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그건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힘이 아니라, 상처를 입고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에요. 그가 끝내 눈을 감지 않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모든 메시지를 압축한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출 — 차갑고 섬세한 화면의 힘
감독 유수민은 ‘폭력의 미학’ 대신 ‘폭력의 구조’를 택했습니다. 카메라는 결코 폭력을 미화하지 않아요. 대신 회색빛 톤과 그림자로 가득한 교실, 비 오는 복도, 숨죽인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두려움의 공기’를 만들어냅니다. 빛보다 그림자가 많은 장면들 속에서 시은의 얼굴은 언제나 하얗게 떠 있죠. 그 대비가 너무나 인상적이에요.
액션 장면도 독특합니다. 한 번의 펀치보다, 그 직전의 침묵과 시은의 계산된 눈빛이 더 강렬합니다. 때로는 슬로우 모션, 때로는 1인칭 시점으로 촬영되어 시청자는 ‘폭력을 당하는 자의 감각’을 그대로 체험하게 되죠.
약한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
〈약한영웅 Class 1〉은 결국 ‘약함의 재정의’입니다. 이 드라마는 말합니다. “약한 건 죄가 아니야. 하지만 끝까지 버티지 않는 건, 자신에게 지는 거야.”
시은은 그걸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결국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자신을 지켜냅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세상 그 어떤 영웅담보다 강렬하게 느껴져요.
마지막 장면에서 시은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모든 걸 말해요. 그는 여전히 외롭지만, 더 이상 약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잔인해도, 그는 그 속에서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해냈습니다.
한 줄 평
이 드라마는 소년의 분노를 통해, 어른이 되지 못한 사회의 민낯을 비춘다.